1997년 12월 열린 진로배. 진로배는 한중일 3국에서 각각 5명씩의 대표기사가 출전해 벌이는 유일의 단체기전으로 대회 창설 이후 모두 우승했던 한국팀은 5연패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이창호의 독재로 조훈현마저 밀려나는 와중에 서봉수는 완전히 뒷전으로 몰렸고, 모두가 "서봉수는 끝났다."라고 말했으며 실제로 제4회 진로배에서는 국가대표로 뽑히지도 못하는 굴욕을 맛보기도 한 서봉수 9단.
1996년 이창호는 국내 8관왕에 국제 2관왕을 기록하는 독재자였고, 유창혁은 SBS연승전과 테크론배, 응씨배를 우승했으며, 조훈현도 패왕전과 기왕전을 우승하며 버티던 시기였습니다.
이런 시기에 1997년의 진로배 국가대항전, 한국의 차봉(두번째 주자)으로 나선 서봉수는 중국과 일본의 기사들을 9연승으로 쓸어버리며 한중일 삼국을 충격에 몰아넣었는데요.
무려 15명이 출전한 올스타전에서 열린 대국은 고작 11국, 중국의 선봉 위빈이 거둔 2승을 제외하면 나머지 대국은 모두 서봉수의 것이었습니다. 국가대항전 9연승은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은 전무후무한 대기록입니다.
이 대회에서 서봉수는 우승상금, 대국료, 연승상금을 포함해 1억4천만 원의 거액을 챙겼고, 한 판도 안 둔 조훈현, 유창혁, 이창호는 2500만원의 우승상금을 챙겼다고 하는데요. 오죽했으면 후배인 나머지 셋은 그렇다 치고 공짜로 2500만원 먹은 동갑내기 조훈현이 서봉수한테 맛있는거 샀느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왔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당시 이미 전성기가 지났던 서봉수가 일본과 중국의 국가대표 9명을 연이어 박살낸 것은 말 그대로 센세이션이었습니다.
서봉수
생일 1953년 2월 1일
나이 68세
학력 배문고등학교 졸업
소속 한국기원
입단 1970년
독학으로 바둑을 배워서 프로 정상까지 올라간 천재 기사로 어릴 때 독학과 내기바둑으로 바둑을 배우면서 입단하는 데 성공합니다. 바둑책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현현기경"을 읽지 않고도 입단했으며 입단 한참 후에 '아, 이런 좋은 책이 있었구나"라고 탄식했다는 일화가 유명합니다.
당시 서봉수는 집안이 가난해서 내기 바둑을 일종의 생계수단으로 삼다시피 한 것인데 그 경험을 실력으로 승화 시키며 천재다운 면모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서명인의 9연승에 대한 자세한 내용
제5회 진로배 세계바둑최강전의 막이 오른 것은 96년 12월 10일이었다.
진로배는 한.중.일 세 나라에서 각 5명의 선수가 출전해, A와 B가 싸우고, B와 C가 싸우고, C는 다시 A와 싸우는, 이를테면 차륜전이었다. 그러나 단순히 상대를 번갈아 바꾸어가며 싸우는 것이 아니었다. 예컨대 A의 제1장,1번타자와 B의 1번타자가 싸워 A의 1번타자가 이기면, A의 1번타자는,이번에는 다시 C의 1번타자와 싸우고, 거기서 C의 1번타자가 이기면, C의 1번타자는 B의 2번타자와 싸우는 식이었다. 한 사람이 출전해 질 때까지 싸우는 것이었다.
흔히 승발전이라고 하며 녹다운제라고 하는데 부연 설명 없이는 개념이 잘 잡히지 않는다.
제5회 진로배에 출전한 우리 대표팀은 조훈현,서봉수,이창호,유창혁,김영환 이렇게 5명이었다. 초등학교 시절에 전국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프로 입단전에는 부산의 신동으로 불렸던 김영환이 선봉인 제5장을 맡았고, 서봉수는 제4장이었다.
대회가 시작되면 각국은 자국의 선수 오더를 제출하는데, 그때의 오더는 대개 객관적인 전력, 간단히 말해 성적순인 것이 보통이었다. 우리 다섯 명 중에서는 김영환이 비교적 약체였고, 그 나머지는 4인방이었다. 4인방에서도 내부의 서열이 있었다. 주지하는 대로 이창호,조훈현,유창혁,서봉수의 순서였다. 단, 처음에 제출하는 오더가 불변의 것은 아니었다. 상황에 따라 다음 출전 선수의 순서를 바꿀 수가 있었다. 어쨌거나 서봉수는 4인방 중에서는 서열이 제일 낮아 제2장을 맡게 된 것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그것이 서봉수에게 일생일대의 광영을 가져다 줄 줄은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그 무렵까지, 서봉수가 각종 국제대회에 나가 올린 성적은 64전 44승 22패로 65.6%의 승률이었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중국 기사에게는 특히 경이로운 전적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15전 14승 1패로 무려 93.3%의 승률. 전승에 가까운 것이었다.
일본의 요다가 한국 킬러였다면 서봉수는 중국 킬러였다.
(14) 익살과 계산속에서
대회가 시작되기 전에 서봉수가 바둑필자들과 우연히 어울린 기회가 있었다. 진로배가 화제였다. 서봉수는 제2회 대회 때에도 일본의 야마시로 히로시, 중국의 위빈, 일본의 이시다 요시오, 중국의 류샤오광 등을 차례로 격파하면서 4연승 행진을 한 바 있었다.
(바둑필자) "지난 번에 4연승한 기록도 있으니까 이번엔 5연승이나 6연승쯤 하지 그래요."
(서봉수) "그게 어디 내 맘대로 됩니까.상대가 져 주어야지요."
(바둑필자) "서명인은 단판 승부에 특히 강하잖아요. 이건 매번 단판 승부라 서명인에게 특히 유리할 것 같은데요. 그리고,우승도 우승이지만 한 판 이길 때마다 대국료에다가 연승을 하면 연승 보너스도 있다면서요? 3연승이면 1만불, 거기서 1승을 추가할 때마다 1만불씩 더 붙는다는군요."
(서봉수) "그래요? 이거 계산을 한번 해봐야겠네."
서봉수는 익살스럽게 웃으며, 짐짓 더듬더듬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서봉수는 바둑필자들이 "에이,무얼 그걸 계산을 해야 아느냐"고 하자 특유의 파안대소와 엄살로 좌중을 즐겁게 해 주었다.
(서봉수) "아니에요. 바둑 둘 때 집계산하는 것하고 이건 또 달라요. 나는 원래 계산하는 것이나 암기하는 것에는 젬병이거든요. 집계산이, 그걸 못하면 바둑을 둘 수가 없으니 할 수 없이 하는 겁니다."
서봉수는 그렇게 참으로 유쾌한 사람인데, 어쨌든 그날 바둑필자들은 공통적으로, 서봉수가 겉으로는 악동처럼 천진난만하고 익살스럽게 웃고 떠들고 했지만, 그 와중에서 속으로는 뭔가 작심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결코 결과론이 아니었다. 바둑필자들 중에는 서봉수에 이상한 믿음 같은 것을 갖고 있는 사람이 상당수가 된다. 앞서 말했듯, 특히 단판 승부일 경우,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벼랑에 서게 되는 경우, 서봉수는 불가사의한 괴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제5회 진로배 개막전에서 한국의 선봉 김영환이 중국의 1번타자 위빈에게 패했다. 제2국에서 위빈은 일본의 톱타자 아와지 슈조를 꺾어 2연승. 위빈의 다음 상대가 바로 한국의 2번 주자 서봉수였다.
(15) 4연승이면 만족?
서봉수는 중국의 위빈을 꺾고, 일본의 히코사카 나오토를 물리쳐 가볍게 2연승, 쾌조의 스타트를 보였다. 그러나 서봉수의 2연승을 대단하게 평가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서봉수는 세 번째 상대, 당시 중국 최고의 신성 창하오를 3백40수에 이르는 대접전 끝에 반집으로 보내 버렸다. 이것이 컸다. 그리고 그것이 서봉수 신화의 첫 번째 고비였다. 계속해서 서봉수는, 이번에는 일본의 차세대 선두주자 야마타 기미오를 날려 버렸다. 거기까지가 제5회 진로배의 1차전이었다. 서봉수의 4연승은 발군이었다. 서봉수 다음을 얘기하며 잡담을 나누고 있던 한.중.일의 검토실에는 약간의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어쩐지 예사바람이 아닌지도 모른다는 느낌들을 받고 있었다. 순식간에 4연승까지로 휘몰아온 서봉수 바람은, 그 동안 여기저기서 가끔씩 보아오던 그런 돌풍이나 태풍과는 왠지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만 1차전이 끝나자 사람들의 설왕설래는 거기서 끝났고, "서봉수 주의보"도 발령되자마자 곧 해제가 되었다. 다분히 토네이도로 변할 가능성을 보여 주기 시작했던 서봉수 돌풍도 잠시 전진을 멈추고 한국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모든 것은 정상으로 돌아왔으며 중국과 일본의 초일류들은 서봉수에 대한 경계를 풀고 각자 휴식에 들어갔다.
4연승을 하고 돌아온 서봉수와 바둑필자들이 다시 만났다. 바둑필자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필자들) "아예 서명인 선에서 끝내시죠. 여러 사람 가서 고생할 거 있나요?"
(서봉수) "나는 4연승으로 끝입니다. 모르죠. 한두 판 더 둘 수 있었으면 5연승이나 6연승도 할 수 있었을지. 그런데 이처럼 쉬었다가 또 두면 아마 안 될 거에요."
(필자들) "그것도 그렇겠네요. 끗발이 살 때 휘몰아가야 하는 건데.. 한창 잘 나갈 때 화장실 갔다오면, 그때부턴 안 되잖아요."
화제는 갑자기 포커로 바뀌었고, 사람들은 앞다투어 옛날에 자기가 얼마나 좋은 패로 당했는가, 형편없는 패를 갖고 어떻게 이겼느냐 하는 무용담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모두들 내심으로는 4연승 정도는 만족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다.
16) 동요하는(?)한국 진영
1996년 세모. 12월 27일, 장소를 바꾸어 서울 힐튼호텔에서 제5회 진로배 2차전이 개막되었다. 관심의 초점은 당연히 서봉수의 연승행진이었다. 이미 4연승을 올리고 있는 서봉수가 앞으로 몇 승이나 더 추가할 것인지였다.
서봉수 앞에 나타난 사람은 중국의 신진 천린신9단이었다. 서봉수는 천린신을 불계로 꺾으며 5연승으로 치달았다.
12월 28일, 6연승의 무대에서 만난 사람은 왕리청. 이번에야말로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그러나 왕리청도 이제는 이미 늘상 경험하던 돌풍이 아니라 가공의 토네이도로 변해 버린 서봉수의 회오리를 저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루를 쉬고 12월 30일, 서봉수는 중국의 중견 차오다위안을 맞이했다. 서봉수의 고전이었다. 서봉수의 연승행진은 6연승으로 끝나는 것 같았다. 서봉수의 돌진에 갈채를 보내고 있던 사람들은 서봉수의 연승이 끝나는 것을 진정으로 아쉬워하고 있었다.
그랬는데, 승부의 여신은 바둑이 그대로 차오다위안의 승리로 끝나는 것을 내버려두지를 않았다. 차오다위안은 이번 최강전의 히어로 서봉수를 내가 꺾는다는 것에 흥분을 했다. 흥분한 바둑이 무사히 갈 리가 없었다. 서봉수는 차오다위안의 종반 실착을 놓치지 않았고, 역전극을 완성시켰다.
서봉수가 7연승으로 질주하자 한국팀 진영에서도 동요가 일어났다. 한국팀에는 아직도 조훈현 유창혁 이창호, 이렇게 세 사람이나 남아 있었다. 출전 오더는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서봉수의 활약을 지켜보면서, 어차피 서봉수가 다 끝내지는 못할 것이므로 천천히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사정이 전혀 달라진 것이었다. 잘못하면 한 판도 두지 못하고 무대에서 내려갈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었다. 우승 상금이야 똑같이 배당을 받겠지만, 바둑을 안 두면 대국료는 없는 것. 대국료도 대국료지만, 승부사로서 싸움터에 나와 한 판도 싸우지 않은 채 우승 상금을 배당받는다는 것은 따분하고도 어색한 일이었다.
일본의 요다 노리모토
조훈현9단이 먼저 투지를 과시했다. 유창혁도 나에게도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란다고 웃으면서 의사를 밝혔다. 이창호는 물론 말이 없었다. 이렇듯 한국팀 진영에서 즐거운 비명이 새어나오는 사이에 96년이 저물고 있었다.
12월 31일. 서봉수 9단은 아침에 기자들을 만나자
"야,이거 오늘 같은 날도 바둑을 두어야 하니,"하며 짐짓 푸념을 했다.
서9단은 기자들과 커피를 마시며 평소와 같은 농담으로 가볍게 웃고 떠들었다. 8연승 결전장에 들어가기 전에 긴장을 풀려는 것이었지만, 그의 얼굴 한쪽은 여느 때와 달리 조금은 굳어 있었다.
"자신 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서9단은 손으로 자기 목을 치는 제스처로 좌중을 다시 한번 웃겨 주고는 대국장으로 들어갔다.
상대는, "한국 킬러"라는 별명을 얻은 일본의 요다 노리모토였다. 검토실의 바둑기자들이 진행담당자에게 "요다 9단이 오늘은 어때요? 뭐 특별한 건 없나요?" 라고 물었다. 뜻이 있는 질문이었다.
몇 년 전에 있었던 조훈현9단과 요다9단의 동양증권배 결승5번기에서 요다 9단이 대국장에 귀마개를 하고 나왔던 것이 다시 화제가 되었다.
그랬었다. 아침에 대국장에 나타난 요다는, 난데없이 귀마개를 하고 있었다. 조9단이 중얼거리는 것이 듣기 싫어서 그랬다는 것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조9단이 대국중에 중얼거리는 것은 정평이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고, 중얼거리는 내용이 각양각색일 뿐, 대국을 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한 마디 중얼거림도 없이 바둑을 두는 사람은 한.중.일을 통틀어 이창호 한 사람 정도일 것이다.
그런 중에도 조9단의 중얼거림이 화려하고 요란하며 다양한 것은 사실이었다. 바둑이 무르익으면 일단 흥얼흥얼 노랫가락 흘러나오다가, 물론 큰 소리로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은 아니다. 잘 들리지도 않을 정도이다. 조9단은 사실 매너도 아주 훌륭하고 깨끗한 사람이다. 승부처에 이르면 "망했나" "미쳤나" "안 되나" 등이 쉼 없이 반복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요다가 그 정도를 못 견뎌 귀마개를 한 것은 아니었다.
서봉수 8연승 신기록
조훈현9단은 사정이 좀 다급해지면 일본말로 중얼거리는 습관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식으로 말하면, 초등학교부터 대학에 들어갈 나이까지, 10년 동안을 일본에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조9단이 "미쳤네" "망했네" "졌네" "아, 나는 바보야" 등등을 한국말로 중얼거렸다면 요다도 별로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창한(?) 일본말로 중얼거리는 데에야 요다로서 신경이 곤두서는 것 또한 무리가 아니었을 것이다. 요다가 귀마개를 한 요절복통할 차림으로 대국장에 나타난 데에는 그런 말 못할 그 나름의 사정과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번에도 혹시 요다가 그 비슷한, 기상천외한 패션으로 등장해 관전객들을 즐겁게 해 주지나 않을까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던 것인데, 대국장에 나타난 요다는 정상적인 차림이었다.
요다가 바둑판에 바둑돌을 놓는, 아니 두들기는 소리는 대국장 밖으로도 울려 퍼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요다의 착점 소리 사이에는 공백이 길어지기 시작했고 그에 발맞추어 한국 진영에서는 조용한 흥분의 물결이 일기 시작했다. 착점하는 소리 사이에 시간적 공백이 길어지는 것은 요다가 장고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요다가 장고를 하고 있다는 것은 바둑이 여의치 않다는 반증이다. 그렇다면 서봉수는 96년의 마지막 날인 오늘 세계대회 승발전 8연승의 대기록, 신기록을 수립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조훈현9단과 유창혁9단을 쳐다 보았다. 조9단과 유9단은 농담을 주고받았다. 유9단이 먼저 조9단에게 공을 던졌다.
(유창혁) "마무리는 조 국수님이 하셔야 하는데, 서 명인님이 저렇듯 혼자 다 끝내시려고 하니 이거 문젠데요."
조9단의 순발력이 넘어온 공을 그대로 보낼리가 없었다.
(조훈현) "바둑도 한 판 못두고 돈을 받을 수야 없지. 그런 사람들은 은퇴해야 하는 거 아니야.우리 같이 은퇴해 버릴까?"
그리고 마침내 서봉수는 8연승의 테이프를 끊었다. 대국장을 나서는 서봉수는 굳이 웃음을 감추려 하지 않았다. 한국 진영에서는 "에이, 서 명인 너무 하네" 하는 즐거운 질책이 쏟아지고 있었다.
화룡점정,그게 뭐죠?
서봉수의 제8승은 반집이었다. 일본의 니코사카 나오토를 상대로 거둔 제2승과 중국의 창하오에게 빼앗은 제3승을 포함해 세 번째의 반집승이었다. 이제 남은 대국은 한 판이었고, 남은 사람은 서봉수와 마샤오춘 두 사람이었다. 해가 바뀌어 97년 2월 21일 서봉수는 베이징으로 날아갔다.
하루를 쉬고 23일, 서봉수는 쿤룬호텔 특설대국장 상좌에 지그시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떠나오기 전날, 바둑필자들과 어울리며 주고 받았던 얘기의 한 토막이 머리속을 맴돌고 있다.
"서 명인, 화룡점정이란 말 아시죠?"
"화룡점정이요? 몰라요. 그게 무슨 뜻이죠?"
"화룡은 용을 그린다는 뜻이고, 점은 점을 찍는다, 정은 눈동자란 뜻이에요. 용을 그리면서 맨 마지막에 눈동자를 그린다는 것이지요. 혼신의 힘으로 정신을 집중해 용의 눈동자를, 점을 탁 찍듯이 그려 넣는 겁니다. 눈동자는 곧 생명이에요. 곧 무슨 일을 할 때 최후의 순간에 결정타를 날림으로써 작품을 멋지게 완성한다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나더러 마샤오춘마저 이겨 버리라 그런 말이군요."
"왜 아니랍니까."
화룡점정. 나는 오늘 용의 눈동자를 그려 넣으려고 왔다. 마샤오춘. 중국 제일인자이고, 사실 바둑도 참 잘 두는 청년이지만, 그러나 마샤오춘에게는 왠지 질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내가 무서워하는 사람은 조훈현과 이창호 뿐 아닌가. 그 두 사람 외에는 누구라도 만만히 나를 이겨 가지는 못하리라. 그러나 마음을 비워야 한다. 승부란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는 것. 이기려고 해서 이기는 것도 아니고, 지려고 해서 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실수를 하면 마샤오춘이 이길 것이요, 마샤오춘이 실수를 하면 내가 이길 것이다.
헹가래를 받았던 추억은 까마득하다.쓸쓸히 돌아섰던 기억은 생생하다. 그게 이상하다. 영광과 기쁨은 세월과 함께 시들어가는데, 나락과 고통은 시간이 흘러도 새록새록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마샤오춘이 들어왔다.돌을 가리니 서봉수가 흑이었다.
서봉수는 마음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긴장한 것은 오히려 마샤오춘인 것 같았다. 바둑은 잘 풀려 나갔다. 중반에 접어들면서 반상에는 파도가 높아졌다. 거대한 바꿔치기가 이루어졌다. 그 바꿔치기로 바둑판은 결정이 되어 버렸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한국팀은 마음껏 축포를 쏘아올렸다. 조훈현과 유창혁,이창호도 자신들이 바둑을 둘 수 없게 된 것을 아쉬워할 계제가 아니었다.
일본팀과 중국팀도 진심으로 축하를 했다. 9연승이란 것은 승률 1백%보다도 값진 것 이라면서 서봉수의 업적에 박수를 보내는 것에 인색치 않았다.
제5회 진로배는 모두 11국으로 막을 내렸다. 11국 가운데 2승은 중국의 위빈이 거둔 것이었고,나머지 9승이 서봉수의 것이었다. 명실상부하게 서봉수의 독무대였고, 그 와중에 일본팀은 5명이 나와 한 판도 건지지 못하면서 고스란히 제물이 되었다.
이 9연승으로 서봉수는, 우승 배당금 2천5백만원에 연승보너스 7만 달러와 아홉 판의 대국료를 포함해 1억4천만원의 수입을 올렸다. 조훈현과 유창혁과 이창호는 무대에 올라가지도 않고 2천5백만원씩을 배당 받으며,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있다면서 겸연쩍은 웃음들을 웃었다.
서봉수의 9연승으로 한국은 진로배의 전신이었던 SBS 세계최강전(진로배와 똑같은 방식이었는데,1회로 그쳤다)까지 계산해 여섯 번의 대회를 독식하는 기록도 세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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